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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영암면 장암리 장암마을 희생 사건
1950. 12. 19.(음력 11. 11.) 영암면 장암리 장암마을에 거주하던 문○신 가족 3명과 문○봉 가족 2명이 영암면 한대리 야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영암면 장암리는 마을 뒤에 있는 활성산이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의 활동이 활발하였고,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경찰의 토벌작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장암리 주민들은 경찰과 빨치산 양측으로부터 협조할 것을 요구받았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거나 희생되기도 하였다.
진실규명대상자 문○신, 최○금, 문○자(2다-10827, 10828, 10829, 신청인 문○님)
진실규명대상자 문○신(文○信, 남, 1914년생, 농사1)), 문○신의 부인 최○금(崔○金, 여, 1913년생, 가사), 문○신의 딸 문○자(제적등본 미등재, 여, 1948년생)는 1950. 12. 19.(음력 11. 11.)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문○님(1941년생, 문○신·최○금의 딸)의 진술에 따르면, 문○신은 임신 중인 부인 최○금, 자녀들과 함께 영암면 장암리 763번지 장암마을에 거주하였다. 1950. 12. 19.(음력 11. 11.) 아침, 문○신의 집에 찾아온 경찰이 문○신과 부인 최○금, 최○금의 등에 업혀 있던 딸 문○자를 끌고 갔다. 신청인을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은 집에서 자고 있어서 끌려가지 않았다. 그날 같은 마을에 살던 문○봉, 문○봉의 부인 전○임도 함께 끌려갔다. 문○봉의 부인도 임신 중이었다. 이후 가족들은 문○신 등 세 사람의 소식을 모르고 지내다가, 1953년 문○신의 동생이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영암면 한대리에 있는 국민학교 옆 야산에서 문○신 등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여서 뼈만 남아 있었지만, 최○금이 딸 문○자를 업을 때 쓰던 무명베로 된 아기띠를 보고 시신을 확인하였다. 문○신의 동생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한대리 각동마을 뒷산에 매장하였다. 제삿날은 세 사람이 경찰에게 끌려간 날 전날인 음력 11. 10.이다.
참고인 문○숙(1947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참고인의 가족과 윗집에 살던 문○신 가족은 마을에서 잘 사는 편이어서, 빨치산이 밤이면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였다. 참고인의 부모(문○봉, 전○임), 문○신 가족은 경찰에게 끌려갔고, 몇 년이 지나서야 영암면 한대리에 있는 국민학교 옆 야산에서 나무에 묶여 있는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문○신의 부인 최○금이 아기 업을 때 쓰던 무명베로 된 띠를 보고 시신을 확인하였다. 이날 두 가족의 시신을 함께 수습하였고, 시신은 선산에 매장하였다.2)
문○신의 사망일이 제적등본에는 ‘1959. 3. 5. 본적지에서 사망(1961. 12. 8. 신고)’으로, 족보에는 ‘경인(庚寅) 11월 8일 졸(卒)’로 기재되어 있다.3) 최○금의 사망일은 제적등본에 ‘1958. 9. 1. 본적지에서 사망(1961. 12. 8. 신고)’으로 기재되어 있고,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문○자는 제적등본과 족보에 등재되지 않았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문○신, 최○금, 문○자의 시신이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가족들에 의해 수습된 점, (2) 세 사람의 시신을 수습한 가족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 문○님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3) 문○신과 최○금의 제삿날이 경찰에게 끌려간 날 전날인 음력 11. 10.인 점, (4) 족보에 기재된 문○신의 사망일이 1950. 11. 8.로 실제 사망일의 음력 날짜(음력 11. 11.)와 3일 차이로 근접한 점, (5) 문○신 등 3명이 희생된 사실을 참고인이 인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문○신, 최○금, 문○자는 빨치산에게 음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붙잡혀 1950. 12. 19.(음력 11. 11.)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진실규명대상자 문○봉, 전○임(2다-10193, 10194, 신청인 문○숙)
진실규명대상자 문○봉(文○奉, 이명 문○환, 남, 1920년생, 농사), 문○봉의 부인 전○임(全○任, 여, 1920년생, 가사)은 1950. 12. 19.(음력 11. 11.)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청인 문○숙(1947년생, 문○봉·전○임의 딸)의 진술에 따르면, 문○봉은 영암면 장암리 580번지 장암마을에서 부모, 부인, 여동생,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였다. 문○봉의 집이 부유한 편이어서 밤이면 빨치산이 와서 먹을 것을 요구하곤 하였다. 1950. 12. 19.(음력 11. 11.), 문○봉과 전○임은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의심을 받고 경찰에게 끌려갔다. 그날, 같은 마을에 살던 문○님의 가족 3명(부모, 여동생)도 끌려갔다. 문○님의 집도 부유한 편이어서 밤이면 빨치산들이 집에 와서 먹을 것을 요구하곤 했다.
가족들은 끌려간 5명의 행방을 모르고 지내다가 몇 년 후에 영암면 한대리에 있는 국민학교 옆 야산에서 5명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5명은 나무에 묶인 채로 총살되어 있었다. 문○봉의 부모가 문○봉이 입고 다니던 검정 두루마기를 보고 시신을 확인하여 수습하였고, 영암면 농덕리 선산에 매장하였다. 나중에 화장하여 수목장으로 하였다. 제삿날은 음력 11. 10.이다.
참고인 문○님(1941년생, 이웃)의 진술에 따르면, 문○봉 가족과 문○신 가족은 함께 경찰에게 끌려가 희생되었다. 이후 가족들은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가, 1953년 문○신의 동생이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영암면 한대리에 있는 국민학교 옆 야산에서 문○신 등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여서 뼈만 남아 있었지만, 문○신의 부인 최○금이 딸을 업을 때 쓰던 무명베로 된 아기띠를 보고 시신을 확인하였다.4)
제적등본에는 문○봉이 ‘1957. 9. 4. 본적지에서 사망(1961. 12. 7. 신고)’, 전○임이 ‘1958. 3. 4. 본적지에서 사망(1961. 12. 7. 신고)’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족보에는 문○봉, 전○임 모두 ‘기(忌) 11월 7일’로 기재되어 있다. 기(忌)는 기일(忌日)을 뜻한다.
이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1) 진실규명대상자 문○봉, 전○임의 시신이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문○봉의 부모에 의해 수습된 점, (2) 문○봉과 전○임의 시신을 수습한 문○봉의 부모(신청인 문○숙의 조부모)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해 들은 신청인 문○숙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3) 문○봉과 전○임의 제삿날이 음력 11. 10.인 점, (4) 족보에 기재된 문○봉과 전○임의 기일이 11. 7.로, 실제 제삿날(음력 11. 10.)과 3일 차이로 근접한 점, (5) 문○봉과 전○임이 희생된 사실을 참고인이 인지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진실규명대상자 문○봉, 전○임은 빨치산에게 음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붙잡혀 1950. 12. 19.(음력 11. 11.) 영암면 한대리 초등학교 옆 야산에서 희생되었다고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문○신은 2022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에 서훈되었다. 독립유공자 공적개요에 따르면, 문○신은 1932. 6.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서 청년회원 70여 명과 소작권 이동 방지를 협의한 후, 덕진면 운암리와 백계리의 신구 소작인의 집에 들어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고 응징한 후 ‘소작쟁의 만세’,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다 체포되어 벌금 30원을 받았다.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참조(e-gonghun.mpva.go.kr).
2) 신청인 문○숙 진술조서(2022. 10. 26.) 문○숙은 2다-10193, 10194 사건의 신청인이다.
3) 『남평문씨순평부원군파대보(南平文氏順平府院君派大譜)』권지2, 539쪽
4) 신청인 문○님 진술조서(2022. 10. 24.) 문○님은 2다-10827, 10828, 10829 사건의 신청인이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