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문헌집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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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문헌집 발굴
여지도서·호남절의록 등 양달사 기록에 관한 증거 자료
1777년 전라도 유생 444명 관찰사에게 보낸 탄원서도
  • 입력 : 2022. 03.18(금) 12:28
  • 선호성 기자
▲ 주부공휘승조파문헌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문헌집이 발굴됐다. 양달사 현창사업회(회장 장만채) 출범 3년여 만에 이룬 값진 성과다.

지난 15일 양달사현창사업회(회장 장만채)는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 장군의 문헌집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 양금호씨(전 주부공파종친회 회장)가 간직하고 있던 ‘주부공휘승조파 문헌(主簿公諱承祖派文獻)’에는 1765년 발간된 여지도서와 1797년 호남절의록에 실린 양달사의 기록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특히 문헌집 발굴의 가장 큰 성과는 양달사 의병장이 영암성대첩으로 전라도민을 왜구의 칼날 아래서 구해냈음에도 도원수와 방어사 등이 의병이라는 이유로 일절 보고하지 않아 조정에서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다면서, 전라도의 유생들이 300여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탄원서를 제출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종류별로는 1777년 2월 도내 선비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가 한 건, 나주 선비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가 한 건, 영암 선비들이 쓴 것으로는 군수에게 두 건, 암행어사에게 한 건, 관찰사에게 한 건 등이다.

또 1777년 전라도 내 유생들이 관찰사에게 올린 탄원서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라도 전 지역의 선비 444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이 탄원서의 대표도 나주 사람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요 내용은 1555년 5월 25일 영암성대첩에서 양달사의 공적을 기술하면서, 그럼에도 모든 공을 도원수 등이 가져가 정작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왜구를 섬멸하고 을묘대첩 이후 영암 향교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겼다는 것, 향교 앞 군더리 방죽(현 공설운동장)을 보면서 행인들이 양달사가 왜구를 유인해 죽인 곳이라고 늘 얘기한다는 대목, 청강 이제신의 시에도 기록됐다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양달사 의병장의 억울함을 탄원하고 있다.

이처럼 전라도 선비들의 탄원이 대를 이어 줄기차게 이어지다가 1842년 전주향교에서 도내 각 향교에 보낸 통문(2021년 나주의병역사박물관에 기증)을 끝으로, 양달사 의병장은 1847년에 좌승지로 추증될 수 있었다.

양달서현창사업회는 이번 문헌집이 원본이 아닌 1958년 필사본이지만, 1555년 을묘대첩 이후 전라도민들이 온 힘을 다해 양달사 의병장이 조선 최초 의병장이자 호국 영웅이라는 점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킬 필요성과 당위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장만채 회장은 “이번 문헌 발굴을 계기로 양달사 의병장에 대한 조정의 무관심에 전라도민들이 300여 년 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해 했었는지를 재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이 전라도의 위대한 의병장이자 호국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영암군과 전라남도,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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