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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열린신문이 12월 5일로 창간 4주년을 맞았다. 2021년 12월 첫 금요일, 작은 지역신문 한 부로 출발한 이 신문은 휴간과 복귀, 온라인 전용기와 종이 복간을 거치며 4년을 채웠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행정의 문턱에서 밀려나기도 했고, 지면 없이 버틴 시간도 있었다. 그 사이 영암의 정치·노동·농업·환경·역사가 지면과 화면 위에 기록으로 남았다. 영암열린신문 4년의 궤적을 돌아봤다.
창간준비호 4회, 종이신문 1기…그리고 휴간
영암열린신문의 출발점은 2021년 11월이다. 정식 창간을 앞두고 ‘창간준비호’라는 이름으로 네 차례 시험판을 냈다. 그해 12월 첫 금요일, 정식 창간호가 나왔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는 종이신문 1기였다. 인구 감소, 대불국가산업단지의 구조적 문제, 지역 현안들을 다루며 ‘지역에서 필요한 신문’이 무엇인지 실험하는 시기였다.
2022년 11월, 신문은 휴간에 들어갔다. 법적 폐간은 아니었지만 지면은 더 이상 인쇄되지 않았다. 이 시기 발행인은 지역의 다른 매체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취재를 이어갔다. 영암열린신문이라는 간판은 내려져 있었지만, 취재와 문제의식은 끊기지 않았다. 약 1년간 이어진 시간이다.
“명단에 없습니다”…온라인 전용 재출발
변곡점은 2023년 12월이다. 다시 ‘영암열린신문’ 간판을 걸고 인터넷신문으로 재출발했다. 종이 지면 없이 온라인 뉴스서비스만 제공하는 1년이 시작됐다.
이 시기에 영암열린신문은 낯선 경험을 했다. 읍면별 순회 ‘군수와의 대화’ 현장. 촬영장비를 챙겨 도착한 자리에서 관계자가 내민 것은 ‘관내 등록 신문사 명단’이었다. 거기에 영암열린신문은 없었다. 종이신문을 발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군수 기자간담회 명단에서도 빠졌다. 행정적으로는 ‘없는 언론사’ 취급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편집국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하려던 것을 그대로 했다. 촬영하겠다고 한 것은 촬영했고, 취재하겠다고 한 것은 취재했다.
군의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에 촬영장비를 들고 들어간 것도 이 시기다. 관내 언론 중 처음이었다. 의회 쪽도 낯설어했고, 처음엔 깐깐하게 굴기도 했다. 그러나 몇 차례 진행하면서 서로 익숙해졌다. 회의록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공기와 분위기가 현장에서 감지됐다. 참관 후 회의록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달랐다. 상임위 영상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군민에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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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없이 시도한 것들
지면이 없던 만큼, 디지털 실험은 오히려 과감해졌다. 종이신문 1기 때는 주요 이슈를 짧게 정리한 쇼츠와 교양 위주 영상에 머물렀다면, 온라인 전용기에는 ‘이슈! 영암’이라는 시사 콘텐츠를 새로 시작했다. 한 주간 영암에서 벌어진 주요 현안을 3~4개 골라, 꼭지당 5분 안팎으로 취재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고 왜 문제가 되는지 풀어주는 형식이었다. 기사로 다뤘던 내용을 일종의 ‘기자 수첩’처럼 정리해, 지면에서 다 담지 못한 맥락과 뒷이야기를 영상으로 이어갔다.
지역방송 뉴스데스크처럼 주말을 제외한 거의 매일, 그날의 주요 소식을 짧게 브리핑하는 포맷도 시도했다. 기획 기사들은 별도 영상으로 다시 정리해 올렸고, 굵직한 현안은 쇼츠로 만들어 빠르게 퍼뜨렸다. 플랫폼도 넓혔다. 유튜브뿐 아니라 블로그·인스타그램·페이스북까지 SNS 전 영역으로 확장했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채널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다.
이 시기에 나온 기획들도 있다. ‘영암군의회 2년 추적기: 민선 8기 상반기, 주민의 돈은 어디로 갔나’ 시리즈에서는 의정운영공통경비와 업무추진비 등 의회가 스스로 쓰는 돈의 공개 수준을 전수 점검했다. 항목별 지출 내역의 시간·장소·인원 정보 누락 문제, 전남 22개 시·군의회 가운데 정보공개가 미흡한 의회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민선 8기 영암군수 해외 출장 분석 5편 시리즈에서는 2년간 5차례, 28일의 해외출장을 전수 분석했다. ‘행복정책 벤치마킹’이라는 명분과 실제 일정 사이의 간극, 출장 보고서가 다른 지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적 관행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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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는 종이로 남아야 한다”…독자가 다시 불러낸 복간
2024년 12월 첫째 주 금요일, 영암열린신문은 다시 종이신문을 복간했다. 온라인 전용 매체로 1년을 버틴 신문이 인쇄소 문을 다시 두드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자들이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출력해 모아 두었다는 독자, “이런 기사들은 종이로 남아야 한다”고 전화를 걸어온 독자, 발행 비용을 물어보며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말한 후원자들이 있었다. 거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들이 쌓이며 복간의 길이 열렸다. 편집국은 이번 복간을 “발행인의 결심이 아니라 독자가 다시 불러낸 신문”이라고 말한다.
복간 이후 1년, 지면은 현안 보도와 함께 ‘영암의 시간’을 기록하는 기획들로 채워졌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를 계기로 영암의 장과 발효 문화를 다룬 연재가 나왔다. 김명성 발효연구소와 함께 장·옹기·곰팡이·김장까지, 발효가 과학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했다.
영암 지역사 대기획에서는 선사시대 고인돌에서 도갑사, 영보정 사건, 인민위원회와 보도연맹에 이르는 영암 현대사까지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어 영암성 연구 성과를 네 편의 기사로 풀어내며, 현재 영암읍 중심가의 도로와 골목 위에 겹쳐 있는 성곽의 흔적을 되짚었다.
지방자치 30년 기획은 현재 연재 중이다. 1995년 첫 민선 군수 선거 이후 30년간 영암이 겪어온 인구 변화, 대불산단과 농업, 청년과 고령화, 좌초된 대형 프로젝트와 성과들을 데이터와 증언으로 따라가고 있다. 30년의 산증인들, 현직 군의원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영암군수 출마가 예상되는 예비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
복간 이후에는 다시 매주 지면을 만들어야 하는 탓에 ‘이슈! 영암’ 같은 깊이 있는 시사 영상 콘텐츠를 꾸준히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군의회 상임위 녹화 영상 편집과 주요 현안 쇼츠 제작을 중심으로, 여건이 허락하는 선에서 유튜브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가 조금 더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 기획 영상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대불산단 산재, 초고압 송전선로…“한 번 붙잡으면 끝까지”
영암열린신문 4년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붙잡으면 쉽게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불국가산업단지 산재와 초고압 송전선로 갈등이 그 단면을 보여준다.
올해만 해도 대불산단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가 수차례 지면에 올랐다. 안전대 없이 10미터 높이 지붕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들, 뒤늦게 시작된 안전문화 캠페인의 실효성까지 잇따라 보도했다. 사설에서는 ‘죽음의 산단’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중대재해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구조적 관리 부실과 책임 회피의 결과라는 지적이었다.
한전의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신해남-신장성선 사업을 둘러싸고 주민설명회와 입선위원 구성, 영암과 다른 지역 사이 형평성 논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문제를 꾸준히 다뤘다. 군수·군의회와 한전, 국회와 중앙정부가 내놓는 설명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주민들이 제기하는 의문과 두려움, 법·제도의 빈틈을 짚어 보도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과정과 그 한계까지 함께 전하며, 에너지 전환의 부담이 왜 특정 지역과 주민들에게 집중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집회, 전남 첫 구제역 발병과 방역·정보 공개 문제, 미암면 폐기물 업체의 대기오염 논란, 축제예산 규모와 우선순위, 인구·생활인구 통계의 모순도 마찬가지였다. 권력과 행정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구조와 책임을 묻는 기사와 사설, ‘뉴스플러스’ 심층 분석으로 이어 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온 4년이었다.
“완성된 신문은 아니다”…독자와 함께 고쳐가는 4년
지난 7월, 영암열린신문은 독자권익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개별 독자의 전화와 메시지로 들어오던 비판과 제안을 조직적인 장치를 통해 받겠다는 의미다.
4년 동안 다룬 기사가 적지 않지만, 편집국은 스스로를 “완성된 신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현장을 따라가지 못했고, 더 일찍 더 깊게 다뤘어야 했던 사안도 있었다는 자각이다.
그럼에도 2023년 온라인 전용기로 복귀해 ‘없는 언론사’ 취급을 받던 시기에도 군의회 상임위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는 사실, 노동자와 농민, 송전선로 아래 마을 주민들의 싸움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종이신문을 다시 복간했다는 사실은 4년을 돌아보는 기준점이 됐다.
창간 4주년을 맞은 영암열린신문은 다음 4년을 준비하고 있다. 속보 경쟁보다 한 번 다루는 사안만큼은 끝까지 따라가고, 영암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겠다는 다짐이다. 그 길을 지켜보는 것은 독자와 지역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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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8(월) 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