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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는 이유 없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영암 월출산 자락의 김명성 참발효연구소에서는 ‘한국의 장과 옹기’를 주제로 한 난로회 아카데미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셰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출연진 등 30여 명의 국내 정상급 요리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2022년 출범한 난로회는 한국 F&B업계를 대표하는 300여 명의 전문가 그룹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실질적인 연구와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직접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셰프들은 이틀간 발효 과학과 옹기의 원리를 배우고 직접 장을 담그는 실습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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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삶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과학
“콩을 왜 삶을까? 콩을 삶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 못 하면 저는 장에 대한 설명을 못 합니다”
김명성 소장은 장 담그기의 첫 단계인 콩 삶기부터 과학적 원리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단순히 콩을 무르게 삶는 것이 아니라 ‘익히도록’ 삶는 것이 핵심이다. 콩을 너무 무르게 삶으면 밀도가 높아져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반대로 덜 삶으면 미생물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콩을 무르도록 삶아놓으면 밀도가 너무 높아져요. 접착면이 너무 높아지니까 수분이 빠져나가고 산소가 들어오고 미생물의 환경 조건이 굉장히 불리해집니다”
특히 콩은 종류별로 성질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논에서 자란 콩보다 밭에서 자란 ‘박콩’이 더 좋은 이유는 까다로운 환경에서 자기 보호 물질을 더 많이 발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주의 비밀, 정확한 계량과 형태
메주 제작의 핵심은 무게와 형태의 정확한 관리다. 김 소장은 1.5kg의 메주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3kg으로 만들면 너무 두꺼워 중간이 잘 발효되지 않고, 1kg은 너무 빨리 건조된다는 것이다.
또한 메주의 모양이 직사각형인 이유도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표면적이 넓어야 곰팡이가 수분에 일정하게 깔려요. 원기둥이나 원형은 닿는 표면적이 좁아 분리됩니다”
김 소장은 메주에 구멍을 뚫는 이유도 설명했다. “습도와 온도가 메주 안까지 골고루 전달되도록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며, 이것이 좋은 발효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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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도 온도, 45% 습도의 과학
참가자들이 가장 놀란 부분은 메주 발효의 정확한 환경 조건이었다. 김 소장은 메주방의 온도는 32도, 습도는 45%가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30도 이하로 내려가면 검정곰팡이가 올라오고, 34도가 넘어가면 메주가 말라버려요. 습도가 50%를 넘으면 곰팡이가 과하게 피어납니다”
이러한 정확한 온습도 관리를 통해 메주 표면에는 하얀 곰팡이만 피어나야 하며, 검은 곰팡이나 푸른 곰팡이는 유해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좋은 메주는 겉면에 하얀 곰팡이만 피어야 하며, 이것이 유익한 발효균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메주를 말린다가 아니라 띄운다”
김명성 소장은 메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으로 ‘메주 말리기’와 ‘메주 띄우기’의 차이를 꼽았다. 그는 “메주는 말리는 것이 아니라 띄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주를 말린다는 표현하지 마세요. 메주는 띄우는 거예요. 띄운다는 소리는 가볍게 된다는 뜻인데, 안에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과거에는 메주를 말린다는 표현도 했지만, 요즘은 선풍기로 말리거나 기계로 말리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메주방에서 1차 발효(8-10일)를 마친 메주는 처마 밑으로 옮겨 바람치기와 햇볕들이기를 20일 이상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메주는 700g대에서 400-500g대로 가벼워진다. 김 소장은 “이 과정에서 메주의 냄새가 순해지고, 하얀 곰팡이들이 떨어지면서 겉은 깨끗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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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를 왜 만드는가?
김 소장은 메주의 본질적 목적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메주를 만드는 이유는 고분자 단백질을 저분자 단백질로 잘 분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미노산이 생성되고, 이것이 장의 감칠맛을 내는 핵심입니다”
특히 메주가 잘 발효되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아미노산 냄새(간장 냄새)가 날 것, 색은 짙은 브라운 계열일 것, 무게가 3분의 1로 줄었을 것, 겉에 하얀 곰팡이가 적당히 피어 있을 것.
참가자들은 메주를 직접 쪼개 보며 이러한 특징을 확인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 소장은 “검은 곰팡이가 없고 내부가 암갈색으로 잘 띄워진 메주가 좋은 장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항아리도 숨을 쉽니다” - 옹기의 과학
이번 아카데미의 특별한 점은 정희창 도예가의 옹기 강의가 포함된 것이었다. 정 도예가는 한국 옹기의 독특한 특성과 발효와의 관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땅속으로 들어간 물레가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하루 만에 1m 가까운 큰 항아리를 만들기 위한 혁신이었죠”
정 도예가는 다른 나라들이 큰 도자기를 만들 때 3-5일에 걸쳐 조금씩 쌓아 올리는 반면, 한국은 하루에 완성하는 독특한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온기의 두께가 1cm도 안 되는 얇은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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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약과 잿물의 차이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위약’과 ‘잿물’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정 도예가는 “옛날 분들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배우지 않으니까 그냥 잿물이라고 했는데, 납 섞은 거는 위약이라고 이제 얘기를 해버리니까 납 섞은 것이 위약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진짜 천연 잿물은 황토와 나무재만을 혼합해 만든다. 반면 일제강점기 이후 등장한 납이 섞인 유약은 광택이 강하고 통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정 도예가는 “납 섞은 유약은 발효에 좋지 않다”며, “천연 잿물로 만든 옹기가 발효 식품에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미학의 본질
정 도예가는 한국 도자의 미적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의 미는 자연의 미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이것이 한국 옹기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는 다완(차 마시는 그릇)의 예를 들며, 일본이 한국의 다완을 국보 1호로 지정할 정도로 한국 도자의 자연스러운 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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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세 종류 메주로 담그는 장
강의 다음 날인 17일에는 직접 장을 담그는 실습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김 소장의 지도 아래 세 종류의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었다.
“대두콩과 청태를 섞은 메주 22개, 서리태 메주 8개, 진운이콩 메주 5개로 총 35개의 메주를 항아리에 넣습니다”
소금물 농도는 18%로, 참가자들은 생활 염도계를 사용해 정확한 농도를 맞추는 법도 배웠다. 김 소장은 “10% 이상의 농도는 희석법을 사용해 측정한다”며 염도 측정의 과학적 방법을 시연했다.
특히 김 소장은 장독의 주기적 관리 방법도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아리 위에 떠 있는 메주를 눌러주세요. 곰팡이가 자리 잡는 환경을 깨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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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장(四豆醬)의 특별함
이번 실습에서 사용된 ‘사두장(四豆醬)’은 김 소장이 개발한 특별한 장으로, 네 가지 콩의 특성을 조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대두콩은 감칠맛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청태는 고소함이 특징입니다. 서리태는 단맛을 더하고, 진운이콩(쥐눈이콩)은 바디감을 높여줍니다”
김 소장은 각 콩의 특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왜 그런 비율로 배합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진운이콩은 결착력이 약해 1kg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1.5kg으로 만든다는 세부적인 기술적 차이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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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경계를 넘어 발효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이번 아카데미는 프렌치, 이탈리안, 노르딕, 한식, 육류, 제과 등 다양한 장르의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발효 문화를 재해석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요리 스타일에 전통 장을 접목할 방안을 모색했다.
“실험실이 된 주방들이 흥미롭습니다. 각 셰프들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장을 해석해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난로회 최정윤 이사장은 이번 아카데미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특히 메주 발효의 과학적 원리와 옹기의 통기성에 주목했다. 일부 셰프들은 이미 식당에서 자체 발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통 방식의 과학적 근거를 배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 담그기의 모든 단계에 과학적 이유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메주의 형태와 온습도 관리가 철저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어요” 참가 셰프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참가 셰프들은 오는 4월, 장 가르기 과정을 배우기 위해 다시 영암을 찾을 예정이다. 김 소장은 “봄에는 장 가르기와 봄김장 등 사계절 발효 체계의 다른 측면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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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09.29(화) 07:34






















봄에 담그는 김장의 혁신, 월출산에서 배우는 발효의 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