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능선에 선 장(醬)의 과학, 장 가르기의 비밀을 배우다

HOME > 기획특집 > 기획특집
9부 능선에 선 장(醬)의 과학, 장 가르기의 비밀을 배우다
유네스코 등재 후 이어진 발효교육의 대미를 장식한 현장을 가다
  • 입력 : 2025. 04.25(금) 13:13
  • 선호성 기자


장은 가를 때 완성된다

“발효는 이유 없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장 가르기는 맛의 9부 능선을 넘는 과정입니다.”

김명성 소장의 이 말은 장 담그기 과정에서 장 가르기가 갖는 결정적 중요성을 함축한다. 단순히 장을 나누는 절차가 아니라, 장의 맛을 완성하는 핵심 단계라는 의미다.

지난 20일, 봄비가 내리는 월출산 자락의 김명성 참발효연구소. 한겨울 메주 만들기를 시작으로 4개월간 이어진 장 담그기 교육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 가르기’ 교육이 진행됐다. 난로학원의 ‘난로 아카데미’ 3기 프로그램의 파이널 수업으로 진행된 이번 교육에는 역대 최다인 약 70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구찌오스테리아, 금돼지식당, 드레스덴그린, 마테르, 을지로 보석 등 장르를 불문한 레스토랑 셰프들뿐 아니라 F&B, 웰니스, IT 업계 관계자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장 가르기는 2월에 담근 장을 열어 메주를 분리하고 간장과 된장으로 나누는 과정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메주를 가르는 정확한 시점과 방법에 따라 최종 맛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잘못된 방법으로 장을 가르면 신맛이나 떫은 맛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 김명성 소장이 난로 아카데미 참가자들에게 장 가르기의 핵심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메주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다

“메주가 딱 돌리면 자연스럽게 벌어져야 합니다. 이게 장 가르기의 핵심입니다.”

김 소장은 장독을 열자마자 참가자들에게 메주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부터 가르쳤다. 메주를 가르는 정확한 시점은 날짜가 아닌 메주의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45일, 50일, 60일 - 이런 숫자에 집착하지 마세요. 메주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일교차, 습도, 온도에 따라 장 가르기 시점은 매년 달라집니다.”

김 소장에 따르면, 메주를 너무 일찍 가르면 메주가 단단하고 분리가 어려워 떫은 맛이 생긴다. 반대로 너무 늦게 가르면 미생물이 과도하게 활동해 간장에 콩 입자가 많이 섞이고 맛이 저하된다.

참가자들은 메주를 손으로 가볍게 돌려보며 그 상태를 확인했다. 적절한 시점의 메주는 가운데까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 김명성 소장이 장독에서 꺼낸 메주를 반으로 갈라 셰프들에게 보여주며 장 가르기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손가락의 미학 - ‘파쇄’와 ‘으깨기’의 차이

“손가락을 세워서 파쇄하듯 눌러줘야 합니다.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떫은 맛이 납니다.”

장 가르기의 두 번째 핵심은 메주를 분리한 후 어떻게 부수느냐다. 김 소장이 강연 중 가장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것과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했다.

“메주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어떤 화학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떫은 맛이 생깁니다. 손가락을 세워 부슬부슬 누르듯이 파쇄해야 맛이 제대로 납니다.”

김 소장은 이 과정에서 손가락만 사용해야 하며, 손바닥이 많이 닿으면 맛이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때 ‘파쇄’란 콩알을 완전히 으깨는 것이 아니라, 메주를 자연스럽게 부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실제 메주를 손으로 부수며 그 차이를 직접 체험했다. 특히 김 소장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경험적 지식이 아니라 실제 맛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적 현상임을 강조했다.

“이건 여러분들에게는 쉽게 들릴 얘기가 저한테는 긴 시간 동안 찾아 헤맨 결과물입니다.”

▲ 난로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장독에서 꺼낸 메주를 손가락으로 바르게 파쇄하고 있다.


된장에 곡물을 넣는 비밀

“어떤 재료를 넣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넣느냐가 중요합니다.”

메주를 분해한 후에는 된장에 곡물을 첨가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단계는 장의 맛과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정이다. 김 소장은 특별히 준비한 볶은 보리와 밀을 꺼내 보이며, 전통 장에서의 곡물 첨가법을 설명했다.

“보리나 밀을 삶아서 넣으면 절대 안 됩니다. 삶은 곡물의 수분은 미생물이 증식하는 원인이 되어 된장이 시어집니다.”

대신 김 소장은 곡물을 볶고 한 번만 갈아서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로 첨가하는 방법을 시연했다. 그는 방앗간에서 참기름 볶듯이 곡물을 볶아 수분을 날려준 후, 한 번만 가볍게 갈아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된장의 맛을 보완하기 위한 곡물은 반드시 수분 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방앗간에서 한 번만 갈아야 합니다. 두 번 갈면 너무 밀가루처럼 되어 뭉치기 쉽습니다.”

또한 김 소장은 된장에 곡물을 넣을 때 뭉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곡물이 뭉쳐 있으면 그 부분에서 미생물이 증식해 신맛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맛을 망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 파쇄된 메주에 볶아서 한 번만 간 곡물가루를 첨가한 모습.


가루 간장과 가루 된장 - 버려지던 보물

장 가르기 교육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내용은 가루 간장과 가루 된장에 관한 설명이었다. 김 소장은 수년간 연구를 통해 이 전통 발효의 부산물을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예전에는 버려지던 이것들이 사실은 감칠맛이 농축된 보물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곰팡이가 없는 깨끗한 장에서만 얻어야 합니다.”

김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가루 간장은 간장이 오래 숙성되면서 장독 바닥과 벽면에 생기는 결정체(장석)를 모아 만든다. 이 결정체는 단순한 소금이 아니라 간장의 유기물이 결정화된 것으로, 특유의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가루 된장은 된장 표면에 자연스럽게 말라붙은 부분을 모아 가루로 만든 것이다. 김 소장은 이 두 가지 모두 12월부터 2월 사이 저온 건조 시기에 햇볕에 자연 건조해야 함을 강조했다.

“건조기를 사용하면 이상한 맛과 향이 생깁니다. 자연 건조가 최선입니다. 양은 적게 나오지만 품질은 훨씬 좋습니다.”

가루 간장과 가루 된장의 활용법도 다르다. “가루 된장은 매운 요리나 탕 요리에 한 스푼만 넣어도 풍미가 달라집니다. 가루 간장은 조미료처럼 마지막에 맛을 잡을 때 활용하면 좋습니다.”

실제로 김 소장은 교육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샘플을 나눠주며 직접 맛을 보게 했다. 참가자들은 이 전통 발효 부산물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 김명성 소장이 소개한 가루 된장과 가루 간장.


장 가르기 후의 관리 - 20일의 휴식

장 가르기 실습을 마친 후, 김 소장은 앞으로의 관리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장 가르기 후 20일간은 장독 뚜껑을 절대 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오늘부터 20일간은 장독을 건드리지 마세요. 장이 안정화되는 기간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열심히 바람치기를 해주세요.”

김 소장은 이 20일의 휴식기가 장의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승에게서 배운 이 방법을 지켜왔더니 실제로 장의 품질이 향상되었다고 전했다.

20일의 안정화 기간이 지난 후에는 햇볕이 좋은 날 장독 뚜껑을 열어 바람치기를 해줘야 한다. 이때 김 소장은 유리 뚜껑을 사용하는 현대적 방식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유리 뚜껑은 편리하지만 장에겐 좋지 않습니다. 장은 숨을 쉬어야 하는데, 유리 뚜껑은 바람치기를 방해합니다.”

그는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 장독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름과 가을로 넘어가면서 장독에는 결로가 생기는데, 이 수분이 곰팡이의 원인이 됩니다. 열심히 바람치기를 해줘야 좋은 장이 됩니다.”

김 소장은 “장독이 숨 쉰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좋은 장은 장독대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며 익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찰과 관리가 장의 맛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임을 강조했다.

▲ 김명성 소장이 이전에 담근 장독에서 메주를 분리하는 모습.


장 가르기로 완성되는 발효 철학

교육 내내 김 소장은 “발효는 이유 없는 게 하나도 없다”는 철학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장 가르기 역시 단순한 전통이 아닌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 과정임을 설명했다.

“뭐든지 이유가 있고 과학이 있습니다. 장의 맛이 시다, 떫다, 곰팡이가 핀다 - 이런 건 전통이 아니라 관리를 잘못한 결과입니다.”

김 소장은 특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져 온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 과학적 기준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식에 곰팡이가 피는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은 “이번 수업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만큼 전통 발효 식품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난로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100여 명의 셰프들에게 한식 문화를 전수해왔으며, 1기에서는 전 요리, 2기에서는 통영 음식 등을 주제로 다뤘다.

4개월간 이어진 장 담그기 교육의 마지막 장면,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장을 가르며 전통 발효의 깊이를 체험했다. 김 소장은 앞으로 참가자들이 가져갈 장은 이번 가을에 완성되어 전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10년 후에도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장 문화의 미래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되, 현대적 관리 시스템을 결합하는 데 있습니다.”

장 담그기 교육의 대장정은 이제 마무리되었지만, 월출산 자락에서 시작된 발효 문화의 세계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위약 아닌 잿물, 곰팡이의 비밀…발효와 옹기의 과학을 배우다2025-02-28 14:02:26
“발효의 예술, 월출산에서 꽃피우다”2024-12-27 12:17:25
한식의 미래를 찾아 월출산을 찾다★2024-12-20 12:00:13
유네스코가 인정한 영암의 장(醬) 문화2024-12-13 14:13:30
키워드 : 교육현장 | 김명성발효연구소 | 난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