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신문 지면에 능력주의와 공동선을 주제로 한 글이 실려 있었다. 10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서점가에서 한창 주목을 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의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하자면 여기서 샌델은 능력주의의 오만이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능력주의는 ‘내가 잘 나서 성공한 거고 못난이들이 경쟁에서 패배해서 힘들게 사는 건 당연하다’며 이걸 공정한 거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에 관한 상세한 얘기는 잠시 미루고 필자는 먼저 10년 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정의는 물론 공정(능력주의에 관한 그의 의문)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던지며 논해보고자 하는 그의 바람대로, 우선은 전제적으로 위대한 사상가들이 내리는 ‘정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각을 먼저 엿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앞서 살펴보는 바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련하게 상황에 걸맞은 예시들을 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지금을 살아내기 위한 철학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철학사에 입문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책의 진가는 단순한 철학사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예로 들어 철학이 무척 친근한 학문임을 일러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실제 책에 실려 있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면, 2004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에 편승해 주유소에서는 하나에 평균 2달러였던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고, 집을 수리하는 업자는 지붕을 덮친 나무 두세 그루를 치우는 데 2만5천 달러를 요구했다. 또한 숙박 요금은 4배나 치솟았다.

자유주의 경제에서는 원래 수요가 늘면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폭리를 취한 업자들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분노를 샌델은 ‘부정의’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윤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던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다. 또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내가 번 돈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불우한 사람에게 가장 이익이 된다는 조건하에서만 자유 경쟁을 인정했다. 그러나 샌델은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을 비판하며, ‘분배’보다 ‘미덕’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공동선’

인간이 돈을 잘 벌고 풍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지는 않다고 한다. (필자는 돈을 많이 벌어보지를 못해서 이 대목은 경험칙상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여하튼 샌델은 이 사회가 ‘미덕을 키우기 위해’, 즉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샌델이 2400년 전에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샌델은 공동체주의자의 입장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공동선’을 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NHK 방송국에서 샌델의 하버드 대학교 강의를 모아 제작한 한 프로그램을 보면, “제일 좋은 피리는 누가 불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보통 여기선 “아무리 좋은 피리라 해도 누구나 평등하게 불 수 있어야 한다”라며 평등주의에 바탕을 둔 대답이 나온다. 이와 달리 “뛰어난 연주자가 불어야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다”라는 대답은 ‘최대 효용’을 중시하는 공리주의자의 대답이 될 것이다.

이에 샌델은 “제일 좋은 피리는 뛰어난 연주자가 가져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앞서 샌델은 아리스토렐레스의 ‘목적론’을 이어받았다고 언급했다. 형상론적 목적론에 따르면 피리는 뛰어난 연주자가 불어서 그 ‘미덕을 실현하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책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들리는 이 목적론을 바탕으로, 존 롤스의 자유주의와 ‘무지의 베일’ 개념을 비판했고 또한 정의를 선택하는 자아는 삶의 올바른 목적과 도덕을 확실하게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존 롤스의 주장에서 도출된 자아에 관한 샌델의 이해와 정의론의 전제가 되는 자아에 관한 주장과 맞물리는 부분이므로 책을 통해 살펴보기를 권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기된 샌델을 비롯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생각은 많은 사람이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서 철학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된 셈이었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인간이 자유롭다는 생각에는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단순히 자유롭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속에 ‘미덕’이라는 도덕적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자연관은 여전히 가치가 있어 보인다.(테스형,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