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며칠 후면 임인년 2022년을 맞는다. 검은 호랑이의 해다. 2008년 이래 매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를 발표해왔다. 내년도 띠인 호랑이를 넣어 주요 키워드 10가지의 첫 글자를 적절하게 조합해 이름을 만든다. 붙여진 이름이 'TIGER OR CAT-호랑이가 되던지, 고양이가 되던지'다.

나노사회, 머니러시, 득템력, 바른생활 루틴이, 내러티브 자본 등 트렌드가 소개됐는데 특별히 러스틱 라이프에 주목했다. 러스틱이란 '촌, 시골풍의'라는 의미가 있어서 시골의 삶이나 촌 생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는 러스틱 라이프를 날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며 도시 생활에 여유와 편안함을 부여하는 시골(向)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한다고 설명한다.

전지구적 코로나 시대 3년차 오미크론의 확산이 강제적 거리두기를 소환하고 있다. 세계여행과 글로벌 확장은 국내의 조용한 곳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집단적인 휴양시설은 기피하는 종목이 돼가고 있다. 집안에 갇히기엔 집이 너무 좁아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곳, 더 깊은 자연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파트에 익숙한 도시민들에겐 비대면의 시대가 알 수 없는 우울과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인류는 의, 식, 주와 관련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그 시도들은 패턴이 돼 문화가 돼 왔다. 당면한 팬데믹 시대는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 방송국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우리나라 50~60대가 가장 즐겨하는 프로그램이다면 이제는 직접 농가나 폐가를 개조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집 생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예전 전원주택이 중상층 이상이 꿈꿀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오두막, 농막, 폐가의 개조와 같은 소박하면서도 자연과 어울리는 시공간으로 떠나는 주말의 삶이 회자된다. 그래서 5일은 도시에서, 주말은 한적한 시골에서라는 '5都 2村'의 삶이 많은 사람의 로망이자 실현 가능한 버킷리스트로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와 도시 생활의 건조함이 시골과 자연의 품으로 도피를, 자연 속 호젓한 휴식을 선택하게 하고 있다.

더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귀농·귀촌 인구는 50만 명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KREI)에 따르면 도시민의 41.4%가 귀농·귀촌 의향을 보였다. 30대 이하 귀농가구가 1362가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귀농인이 많은 의성, 상주, 고흥, 화순, 임실을 보면 동일지역 내 또는 연고지 등 익숙한 곳, 영농기반 마련이 쉬운 곳으로 귀농하고 있다. 전남의 시·군에서 하는 '한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이나 전남교육청 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은 귀촌 또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전 실험을 가능케 하는 좋은 정책이 되고 있다. IT 기업을 적극 유치해 시골, 농촌의 자연 휴양지에서 업무를 보는 워케이션(work+vacation)도 가능한 일이다.

이제 사람들은 도시와 농촌을 넘나들며 빌딩숲과 자연을 오가는 삶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으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인구는 농촌 거주지를 갖기 위한 모색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남의 16개 군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암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도시민들의 제2의 고향으로 머무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최적의 곳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남도를 여행하고 남도에 잠시 머물며 일상을 보내다가 점차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오랫동안 거주할 자리, 집을 갖게 된다. 팬데믹 시대, 지친 도시민들에게 남도는 자연의 치유력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거처가 될 수도 있겠다.

[약력]
문화인류학 박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촉위원
전남양성평등센터 센터장
- 본 기고는 12월 21일자 전남일보 인터넷판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