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영암읍 전경

글 싣는 순서
① 1995년 6월 27일, 영암의 선택 - 862표가 만든 역사
② 데이터로 본 영암 30년: 양적 성장 속 질적 과제
③ 증언 - 지방자치 30년을 관통한 목소리
④ 의정을 말하다 - 현직 군의원 인터뷰
⑤ 미래를 묻다 - 차기 군수 후보들의 비전


1995년, 영암군민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손으로 군정을 이끌 대표를 뽑았다. 그해 영암의 살림은 713억 원이었다. 30년이 흐른 2025년, 예산은 11.6배 성장한 8,260억 원에 달한다. 읍면의 도로들은 넓게 포장됐고,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지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숨어있다. 같은 기간 재정자립도는 28.1%에서 12.1%로 추락했고, 인구는 5,024명이 사라졌으며, 주민 3명 중 1명은 노인이 되었다. 지방자치 30년의 성적표는 이처럼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통계를 통해 영암이 걸어온 길을 균형 있게 되짚어본다.


1. 재정: 커진 살림, 약해진 허리

30년간 예산의 외형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군의 ‘경제 체력’인 재정자립도는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정부의 복지 정책 확대에 따른 국고보조사업(매칭 사업)이 전국적으로 늘어난 구조적 요인이 크다. 총예산은 늘지만, 정해진 용도에만 써야 하는 돈이 많아져 지자체의 재정 자율성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다.

늘어난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30년간 사회복지 예산 비중은 5.6%에서 23.5%로 4배 이상 폭증하며 최대 지출 항목이 됐다. 고령화 시대에 필수적인 선택이지만, 이는 늘어난 예산의 상당 부분이 미래를 위한 ‘투자적 예산’보다 현상 유지를 위한 ‘의무적 경비’에 집중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세입 구조의 취약성이다. 2024년 지방세 수입의 54.8%가 HD현대삼호중공업 등 소수 대기업이 내는 ‘법인지방소득세’다. 이 구조적 취약성은 2016년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조선업 불황은 2013~2015년 해양플랜트 사업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고, 기업의 실적 악화는 시차를 두고 2016년 법인지방소득세 60% 급감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특정 산업, 특정 기업의 부침이 영암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 인구: 엇갈리는 곡선, 구조적 위기의 시작

영암의 인구 곡선은 지난 30년간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1995년 5만 5천여 명이었던 인구는 조선업 호황과 함께 꾸준히 증가해 2005년 61,72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일자리가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이다.

하지만 성장은 길지 않았다. 1단계 하락기(2008년~2010년대 중반)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조선업 구조조정이 주도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영암을 떠나며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2단계 하락기(2010년대 중반~현재)는 더 심각하다. 경제 위기를 넘어 인구 구조 자체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 2년간 감소한 1,608명 중 자연감소(-1,010명)가 사회적 유출(-598명)의 1.7배에 달한다. 외부 충격이 없어도 내부에서 소멸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HD현대삼호중공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인구 순유출(-314명, 호남지방통계청)이 전남 군 단위에서 가장 많았던 이유는 ‘정주여건’ 문제로 귀결된다. 삼호읍 주민 상당수가 더 나은 주거·교육 인프라를 찾아 인근 무안 오룡지구의 신규 아파트로 이주하고 있다. 일자리만으로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3. 삶의 질: 깊어진 격차, 낮아진 활력

30년간의 양적 성장은 군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으로 고르게 이어지지 못했다.

지역 내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삼호읍은 30년간 인구가 46.2% 증가했지만, 나머지 10개 읍면은 모두 인구가 감소했다. 삼호읍마저 최근 인근 신도시로 인구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농촌 지역의 공동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인프라의 질적 변화도 엇갈린다. 치과(4→8개소)와 한방의원(4→7개소)은 늘었지만, 1차 진료를 책임지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19개소에서 18개소로 오히려 1곳 줄었다. 폭증하는 노인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28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젊은 세대가 돌아올 기반은 더욱 약해졌다.

사람 떠난 자리는 빈집(14.9%)과 ‘나 홀로 가구’(42.2%)가 채우고 있다. 특히 ‘대불산단의 중장년 남성 1인 가구’와 ‘농촌의 고령층 독거노인’이라는 이중적 사회 구조는, 영암이 풀어야 할 복잡하고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 2010년대 삼호읍 대불국가산업단지 전경

결론: 30년의 성찰, 새로운 길을 묻다

지방자치 30년. 영암의 양적 성장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재정 구조의 취약성, 인구 구조의 붕괴, 삶의 질 격차라는 무거운 과제가 남았다. 성장의 과실이 군민 전체의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다지는 데는 한계를 보인 것이다.

숫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지난 3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30년은 무엇에 집중하고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다음 편에서는 지방자치 30년을 온몸으로 겪어온 이들의 증언을 통해 이 숫자들 뒤에 숨은 이야기와 미래를 향한 제언을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