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봄의 노래: 아천리와 연보리의 슬픈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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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봄의 노래: 아천리와 연보리의 슬픈 메아리
영암군 민간인 희생사건(1) #015
  • 입력 : 2024. 09.13(금) 10:58
  • 이민정 기자


영암 민간인 학살 희생에 관한 자세한 얘기들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영암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결정문 안에 제법 세세한 당시 상황들이 기록돼 있었다. 보도자료로 어림짐작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됐다. 적어도 결정문에 담긴 내용만큼은 전부 게재할 요량이다. 연재 내용은 결정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아천리 김창우 희생사건

1951년 1월 22일 아천리 동령마을 주민인 김창우는 피난 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다가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이웃인 아천리 식산마을 이종수(당시 28세)는 “김창우는 나이가 많아 피난하지 않고 그냥 집에 있었는데 경찰이 집에까지 들어와 죽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당시 김창우의 두 아들(김세두·김오두)은 입산한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마을 수색 중 입산자가족인 김창우를 보고 아들의 행방을 추궁하다가 총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창우의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하였다.


연보리 주민 연행 후 살해사건

연산마을 주민 10여 명은 1951년 3월 3일 마을에 들어온 경찰에게 붙잡혀 영암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이 중 김하두(당시 29세)·김금용(당시 37세)·김동두(당시 21세)·박찬우(이명 박찬범·당시 22세) 등은 영암경찰서에 구금 중 행방불명되었다.

박찬우의 동생인 참고인 박찬일(당시 15세)은 “도로가에 있는 조두형·김만동의 집은모퉁이라 위험할 때 도망하기가 좋아 주민들이 두 집에 나누어 다 같이 자고 있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어린애들과 영감은 빼고 형을 포함해 젊은 사람들만 끌고 갔다. 그날 영암경찰서까지 같이 끌려갔다 돌아온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종형 박찬홍도 풀려나와 자신과 함께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사망 소식을 알려주었다”고 진술하였다.

김하순(여·당시 20세·김하두의 동생)은 “오빠(김하두)와 사촌 김금용·김동두랑 마을사람 몇 분이 경찰에게 잡혀서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그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끌려간 사람들은 그날 바로 죽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체도 찾지 못하고 있다”1)고 진술하였다.

주민 박동재(당시 20세)는 “마을에 들어온 경찰이 김하두·김금용·김동두·최상순 등 젊은 사람들을 싹 영암경찰서로 끌고 가 죽였다. 우리가 공산당 있는 산 아래 살았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였다.

김하두·김금용·김동두·박찬우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지만 이들이 영암경찰서에 연행된 후 살해되었다는 당시 생환자들의 진술이 있었고 이후 이들이 생존하였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으므로 이들은 영암경찰서로 연행된 후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에 계속


1) 참고인 김하순 통화보고서(2008.9.2.); 참고인 오융부 통화보고서(2008.9.2.); 참고인 김정임 통화보고서 (2008.9.24.) “오빠들(김금용ㆍ김동두)하고 집에서 지내면서 피난을 다녔었는데 그날도 나는 세지면 외가까지 갔다 와 보니 오빠들하고 사촌 김하두가 경찰에게 끌려갔다.”
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