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주민자치, 강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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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주민자치, 강요해선 안 된다
  • 입력 : 2025. 03.21(금) 13:09
  • 영암열린신문

영암군이 주민자치회를 읍면의 대표 조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불거진 형평성 논란과 갈등은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사안이다. 지난 18일 자치행정위원회에서 집행부와 의회 간 벌어진 충돌은 단순한 조례 개정 문제를 넘어, 주민자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주민자치회 제도는 분명 현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이며, 주민참여 확대라는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영암군의 방식에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 주민자치회를 구성한 5개 읍면에만 8천만~1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오랜 기간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문화체육행사추진위원회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위에서 내려온 민주주의’라는 모순을 보여준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강요가 아닌 자발성에 있다. 군 집행부가 주민들의 대표 단체를 ‘주민자치회로 가야 하는 방향’이라고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은 진정한 자치와 거리가 멀다. 농촌 지역에서는 다양한 모임과 협의체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이런 유기적 체계를 행정 편의주의적 시각으로 일원화하려는 시도는 지역 공동체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정책이 지역사회 내부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의원들이 지적했듯이, 주민자치회와 문체위 간의 갈등은 ‘읍면에 불협화음’을 낳을 수 있다. 같은 마을을 위해 활동해야 할 주민들끼리 대립하게 만드는 정책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졌더라도 재고해야 마땅하다.

전국적으로 지방소멸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이다. 특히 영암군과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 역량을 어떻게 결집하고 활용하느냐가 생존의 열쇠다. 기존의 지역 대표성과 신뢰를 가진 단체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은 한정된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에 필요한 경험과 지혜를 소실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군 집행부는 ‘주민들이 협의해서 결정한 사항대로 가겠다’고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11개 읍면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5개 읍면만 주민자치회를 구성했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아직 지역사회 전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자치 3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진정한 주민자치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할 때다. 그것은 특정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주민 의견이 존중받고 지역 현안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다. 집행부는 ‘더 나은 주민자치’라는 추상적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현실에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불균형과 소외감부터 해소해야 한다.

영암군이 지향하는 ‘주민자치 1번지’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 이름보다 그 안에 담긴 주민들의 의지와 역량이 중요하다. 성급한 제도 도입보다 기존 단체들과의 유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현실적인 단계별 접근 방식을 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진정한 주민자치는 강요할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형평성을 저해하는 예산 배분은 오히려 지역 분열의 씨앗이 될 뿐이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