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데우스’에는 2010년대 유럽의 과학자들이 했던 동물에게도 공감 능력이 있는지에 관한 실험이 소개된다. 과학자들이 작은 우리 안에 쥐 한 마리를 가두고, 그 우리를 매우 넓은 방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의 쥐를 그 방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한다. 그러자 우리에 갇힌 쥐는 고통 신호를 보냈고, 자유로운 쥐도 불안과 스트레스 징후를 보였다. 대부분은 자유로운 쥐가 갇힌 동료를 구하러 나섰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우리의 문을 열고 갇힌 쥐를 풀어주는 데 성공한다.

감동적인 실험이다. 연구자들은 비슷한 실험을 달리해 이번에는 방 안에 초콜릿을 두었다. 자유로운 쥐는 이제 갇힌 쥐를 풀어줄지 초콜릿을 혼자 다 먹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의 쥐는 먼저 동료를 풀어준 다음 초콜릿을 나눠 먹는다. 물론 몇몇 쥐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해 다른 쥐들보다 야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실험으로 동물에게도 공감 능력, 즉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의 명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상적인 그림이 하나 있다. 부엌에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시어머니, 며느리들과 텔레비전 앞에 모여있는 남편과 아버지, 명절이 누구에게는 완전하게 쉬는 날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가사노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날이기도 하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 화목함을 위해 누군가는 쉼 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 그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노동 말이다. ‘저 사람도 쉬고 싶을 텐데…’, 또는 ‘같이 쉬어야 할 텐데…’와 같은 최소한의 공감이 없는, 즉 당신의 노동과 희생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남성 중심적 문화적 코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 만든 문화적 기제 위에는 위의 쥐 실험에서 보이는 최소한의 공감도 발견하기 힘든 비정함이 있다.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니라면 참 다행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당연하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 결혼한 여자는 시댁에 가면 앞치마부터 입고, 결혼한 남자는 처가에 가면 손님 대접부터 받는 이러한 불균형이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을 꺼리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식구를 맞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환영 인사가 남녀에게 다르게 작동할 때, 이제는 그 부당함을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이 밖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도 여성들은 다시 집안일을 시작하는 이런 불평등을, 누구에게는 쉴 권리가 있고, 누구에게는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맡기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세대이다. 이전 세대에게는 당연한 문화였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가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결혼생활로 인해 고착되는 남녀불평등의 문제와 성별로 분리되었던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며, 이러한 갈등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 모든 갈등을 짊어지고 살아온 자신의 부모처럼 살기 싫다는 답변을 한다. 생계를 자신의 한 몸에 모두 짊어져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모든 가사와 육아, 그리고 시댁으로부터 받는 모든 의무와 책임 등을 감당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남녀간의 역할분업과 가족문화가 서로에게 공감이 되지 못했고, 서로의 행복과 권리를 보살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임시방편적인 현금 지급형 저출생 대책이 아닌 서로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남녀, 평등한 가정문화의 형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결혼과 가정생활이 평등하고 민주적일 때,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해서 더 행복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결혼을 삶의 대안으로 선택하며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남아프리카 반투족에는 “우분투(Ubuntu)”라는 인사말이 있다. ‘당신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는 의미다. 너의 희생이 나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수고와 함께하는 행복, 즉 일과 생활의 균형, 남녀평등한 가족문화의 정착이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장기적으로 극복해 낼 대안이다.